Texte original : 18. 역사 연구에서의 현재성 (논쟁으로 읽는 한국사)
Onglets principaux
1972년 남북한 정권은 분단 후 통일에 관한 최초의 합의인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남북공동성명 은 비록 남북 집권자들 사이의 합의였지만, 자주적 - 민족적 - 평화적 통일원칙에 최초로 합의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남북공동성명 이후 남한 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유신체제를 구축했고, 북한 정권은 '사회주의헌법'을 제정하여 1인통치체제를 확고히 함에 따라 분단체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결국 ‘7.4남북공동성명'은 남북한 정권의 통치체제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고, 남북한 정권은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통합하려는 기존의 통일정책을 계속 고수했다.
분단현실에 대한 자각과 통일노력
이런 시대적 조건은 한국사학계에서 '민족사관'의 논의를 식민사관 비판이라는 차원을 넘어 분단현실 비판과 극복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해방 이후의 시대를 '분단시대'라고 이름하는 이 새로운 움직임은, 한국사학이 일제강점기 민족사학과 사회경제사학을 계승하여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데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분단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분단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한국사학계 내의 새로운 움직임은 이후 다른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에서 "분단시대의 학문적 과제는 무엇인가" 라는 문제가 제기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와 함께 역사학계 내에서는 역사 연구에서의 현재성 반영 문제, 역사가의 가치판단 문제 등을 둘러싼 '현재성' 논쟁을 불러왔다.
역사에서 현재는 무엇인가
논쟁은 새로운 움직임을 주도한 강만길의 글에 대해 이기백이 현재성 문제를 중심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양병우가 역사가의 가치판단 문제를 중심으로 반론을 제기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국사학의 현재성 부재 문제"(이하 ‘현재성 부재’로 줄임)에서 강만길은 역사 연구에서의 현실반영과 현대사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한 시대, 한 민족의 역사학이 그 민족이 처해 있는 현재적 요구와 그다지 연관성 없는 지난날의 사실만을 연구대상으로 삼고 현재와 가까운 시기에 대한 연구 - 평가 - 비판을 기피한다면 학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해방 후의 민족사회가 가진 현재적 요구로서 분단시대의 극복과 진정한 의미의 민족국가 수립 문제, 인간해방을 위한 새로운 단계로서의 올바른 근대화 문제 등을 외면한 한국사학의 현재성 부재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기백은 "한국사 이해에서의 현재성 문제"(이하 ‘현재성’으로 줄임) 에서 역사학은 사회과학과 달리 시대적 변화에 대한 고찰을 임무로 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역사학에서 현재성을 강조하는 것은 역사학의 기본적인 성격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역사학을 철학이나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으로 변질시키 는 것이므로 곤란하다고 하는 입장이다.
위 두 글의 차이점은 "역사 연구에서 현재는 무엇인가" 라는 문제에서 출발한다. "현재성 부재"는 "모든 역사가 현재의 역사라는 말은 역사가가 연구하거나 서술하는 모든 시대의 역사 속에 현재의 요구와 상황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현재도 또한 역사학의 가치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역사 연구에서 현실 "반영"을 강조했다. 그에 비해 "현재성"은 사회과학과 달리 역사학은 시대적 변화의 법칙을 발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역사에서 현재는 역사가 발전해나가는 일정한 단계로서의 현재이며, 현재를 이해하는 최선의 길은 역사의 발전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여 역사 연구에서의 현실 '이해'를 강조했다.
이런 강조점의 차이는 다시 역사 연구의 구체적 방법의 차이로 연결된다. "현재성 부재"는 역사 연구의 목적은 각 역사시대마다의 현실을 '반영'한 시대정신을 구하는 데 있다고 전제하고 한국사에서 20세기 전반기의 시대정신 은 민족해방의 달성이었고, 후반기는 민족통일의 달성이라고 했다. 따라서 사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일제강점기에 민족해방운동과 노선을 같이한 경우와 분단시대에 민족의 통일노선에 구심 작용을 한 경우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고 그것에 역행한 경우는 반역사적 반민족적 사실로 평가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국사학의 현재성 부재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대사, 중세사, 근대사 연구와 서술에 현재의 요구와 상황을 반드시 반영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한국사학의 연구영역을 현재에 가까운 시기까지 적극적으로 확대할 것을 주장했다.
그에 대해 '현재성'은 일제강점기나 분단시대가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이 시대가 한국사의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했기 때문이므로, 한국사의 정상적 인 발전체계 속에서 일제강점기나 분단시대를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현재에 가까운 시대에 대한 연구의 공백이 한국사 전체의 체계적 인식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그 공백이 메워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현대사 연구의 촉진이 요구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현실에 대한 역사학의 임무와 관련하여 '현재성 부재'는 한국사학이 민족사회의 가장 절실한 현재의 요구를 학문 외적인 문제라는 핑계로 외면한다면 중요한 임무를 기피하는 학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현재성'은 정확한 역사적 사실에 뒷받침된 한국사의 발전에 대한 체계적 인식을 제시하는 것이 한국사학의 임무이며, 현재에 대한 역사학의 발언은 이런 역사학의 독자적인 방법을 통해 학문적 권위로 행해져야 한다고 했다.
결국 '현재성 부재'가 민족분단이라는 현실을 역사 연구에 철저히 반영하여 분단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사학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면, '현재성'은 역사학의 독자적인 방법을 통해 한국사의 정상적인 발전체계를 인식하는 속에서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실해석에서 역사가의 역할 문제
다시 강만길은 "분단시대 사학의 반성" (‘반성’으로 줄임)에서 20세기 민족사의 현재적 요구는 전반기에는 식민통치를 벗어나 민족해방을 이루는 것이었고, 후반기 즉 해방 후에는 민족분단의 역사를 청산하고 통일민족국가를 수립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20세기 후반기를 '분단시대'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분단시대 한국사학의 현실유리와 현실매몰을 비판하면서 그 극복방법을 제시했다. 첫 번째 비판은 한국사학이 식민사학론의 극복을 최대과제로 삼았던 사실은 일제강점기의 실증사학이 문헌고증학적, 역사지리 학적 연구에 주로 탐닉했던 것과 비교하면 일단의 진전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나, 민족분단이라는 현실 문제를 외면함으로써 한국사학은 민족사회의 현실과 유리된 역사학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두 번째 비판은 분단시대는 일제강점기와 같이 역사적으로 반드시 극복되어 야 할 시기이며 그 자체로서 어떤 역사적 당위성도 가지기 어려운 시대임을 한국사학이 철저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즉 식민지체제가 민족사에서 그 당위성을 인정받을 수 없었던 것과 같이 분단체제 역시 역사적 당위성을 벗어난 체제임을 한국사학이 철저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분단시 대 한국사학의 민족 문제 이해가 분단체제적 차원을 넘어서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민족통일의 지도원리로 정립되어야 할 민족주의이론은 분단체제 안에서의 민족론을 넘어서는 통일지향의 민족론이 되어야 하며 한국사학도 여기에 봉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사학이 분단시대를 극복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으려면 우선 민족사 회의 현실적 요구가 투영되는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분단시대 한국사 학이 현실에 매몰됨으로써 가지게 된 전前시대적 복고주의 - 영웅주의 사론을 철저히 비판하는 작업을 통해 그 제약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분단시대 한국사학이 가진 제약성을 극복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통일민족국가 수립에 공헌할 수 있는 사실을 연구 - 개발하고, 보다 높은 차원에서 통일지향적 민족주의론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에 대해 양병우는 "통일지향 민족주의 사학의 허실 - 강만길 교수의 ‘분단시대 사학’ 극복론에 대하여" (이하 ‘허실’ 로 줄임)에서 학문외적인 주관적 전제로서 연구관점이나 해석을 선택하는 것은 현재를 과거에 일방적으로 투영하여 역사의 현대화 오류를 범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고, 역사학이 실천적 목적에 이바지하려면 우선 그것이 학문적으로 빗나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역사 연구는 추구된 목적에 의한 가치판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도달된 결과에 대한 인과적 설명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반성'에서 제기된 역사적 당위성에 대해 역사의 세계란 말할 나위 없이 현실의 세계이지 당위의 세계가 아니므로, 그 속에서는 당연한 일, 당연히 되어야 할 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당연한 요구를 외치고 몸부림쳤어도 그것을 관철하지 못했을 경우 역사 연구는 현실이 왜 그렇게 되었으며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구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땅히 그랬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그렇지 못했던 일들이나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을 규탄하려 든다면 잘못된 방법론이라는 것이다.
'반성'이 역사적 당위성을 통해 역사가가 현실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역사 연구를 진행할 것을 강조했다면, '허실'은 역사 연구는 추구된 목적에 의한 가치판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도달된 결과에 대한 인과적 설명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성' 논쟁은 역사 연구에서의 현재성 투영 문제, 역사가의 가치판단 문제, 역사학의 임무 등 역사학에 대한 근본적인 논쟁이었다. 강만길이 역사 연구에 현실의 문제를 적극 '반영'하고 이를 통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사론을 수립하는 것이 역사학의 임무라고 강조했다면, 이기백 - 양병우는 역사 연구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간적 변화의 체계적 이해와 인과적 설명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위 논쟁 참여자들의 주장은 역사 연구에서 상호보완적 성격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역사 연구에서 현실 '이해'를 바탕으로 한 현실 '반영'과 현실 '반영' 을 위한 현실 '이해'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