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uctions pour : 조선상식문답 (해제)

Le Monde quotidien des Coréens - Q&R - Présentation

Texte original

Traduction

1.간행 경위

『조선상식문답』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최남선이 한국에 대 한 제반 지식을 널리 알리려는 목적으로 출간된 책이다. 이에 앞서 1937년 1월 30일부터 9월 22일까지 160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강토편 ·세시편 ·풍속편 등 16편 456항목의 「조선상식」을 연재하 였는데, 이 원고를 토대로 하여 『조선상식문답』과 『조선상식문답 속편』을 새로 집필하여 해방 후에 출간하였다,

해방 후 최남선은 동명사를 재건하여 자신의 저술을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일에 주력하였는데, 『국민조선역사』, 『조선독립운동사』, 『쉽고 빠른 조선역사』, 『성인교육 국사독본』, 『중등국사』, 『조선의 고적』, 『조선의 문화』, 『조선의 문학』, 『조선의 민담』등 단행본이 말 그대로 쏟아지듯이 출간되었다.

이처럼 집중적인 출간에는 해방과 함께 노년기에 접어든 최남선 이 자신의 학문을 정리하려는 의미도 있었고, 일제 말기를 거치면서 한국 문화와 한국 역사에 관한 책이 거의 사라진 실정을 감안하 [[225]] 여 이를 보급하려는 의미도 있었다. 자주 독립하여 이제는 임자 노릇을 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였지만 그에 걸맞는 책이 없었던 것이다.이러한 상황을 『조선상식문답』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표 하고 있다.

                         지나간 시절은 그렇다 해도 자주 독립하여 내가 내 임자 노릇하게 된 오늘날 이후에야 무엇으로 조선을 몰라도 된다는 핑계를 삼을 것인 가. 그러나 조선인이 조선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만의 탓이 이니다. 그들이 배우고 알고 그리하여 보고 느끼고 분발할 만한 조선 지식의 지름길을 내주지 않은 책임이 따로 있을 것인가.

이글에서 나타난 것처럼 최남선은 ‘조선 지식의 지름길’을 내려는 책임을 안고 『조선상식문답』을 집필했던 것이다.이를 위해 10년 전에 『매일신보』에 연재했던 「조선상식」의 양을 줄이고 문장을 쉽게 하고 문답 형식으로 고쳐 당시의 다급한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집필하였다.

『조선상식문답』이라 하여 ‘조선’이란 표현을 쓰고 있지만, 여기 서의 ‘조선’은 조선 왕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제 시기에 하 반도를 지칭하는 지역으로서의 ‘조선’이다, 아직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기 전이라 그대로 쓰인 것으로, 현재 용어로 바꾸면 이 책은 ‘한국상식문답’ 또는 ‘한국학상식문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2.구성과 내용

이 책은 총 10장 172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호, 지리, 물산, 풍속, 명절, 역사, 신앙, 유학, 종교, 어문 등 10개 의 장을 두고 그 아 [[226]]래에 총 172개의 문답 항목을 두었다. 이들 10개 의 장은 국호 - 지리 - 물산 등 자연적 조건에 해당하는 장을 앞부분에 배치되고, 이 어서 풍속, 명절,역사, 신앙, 유학, 종교, 어문 등 문화와 관련된 장 이 배치되었다.

제1장이 〈국호〉라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제1장에서 ‘조선(朝鮮)’ - ‘대한(大韓)’ - ‘고리아’ - ‘진(震)’ - ‘청구(靑丘)’ - ‘동국(東國)’ - ‘해동(海東)’ - ‘대동(大東)’등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다양한 용어의 기원, 의의 등 을 10항목에 걸쳐 서술하였다.국호에 대한 내용을 가장 앞에 설정 한 것은 최남선이 그만큼 국호를 중요시했다는 증명이다. 이는 우리 민족의 생활권이 비단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았음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방 후 최남선은 우리 민족의 생활 무대를 북방으로 넓혀 만주 고토를 수복해야 한다고 적극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입장이 목차 구성에도 반영된 것이아닌가 한다.

최남선이 특히 즐겨 사용한 호칭은 ‘진(震) 으로, 동북방을 의미하는 진은 동방에 있는 모든 나라를 통틀어 말할 때 쓰이는 호칭이라 하고 한민족의 생활 무대 전체를 아우를 때는 ‘진역(震域)’으로 표현하였다. 최남선에게 ‘국호’가 지리 인식에 속하는 것은 『조선 상식-지리편』이 1  지문류(地文類), 2  산악류(山岳類), 3  강해류(江海類), 4 인문류 (人文類), 5 국호류 (國號類)로 구성된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1] . [[227]]

 

제2장과 제3장에서는 한국의 자연적 조건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조선의 위치, 면적, 해안선 - 도서, 삼천리의 유래, 행정상의 구획 등이 제2장 〈지리〉에서 23항목에 걸쳐 서술되었고, 조선의 자원, 동식물, 광산, 쌀 - 인삼 - 과실 - 목재 - 광물질 등의 산물이 제3 장 〈물산〉에서 25항목에 걸쳐 서술되었다.

제4장부터 제10장까지는 문화와 역사에 관한 내용을 분야별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제4장 〈풍속〉에서는 흰옷, 두루마기, 망건 퉁 의복의 유래와 신선로, 약식 등의 음식, 백날 - 돌 - 관례 - 장가 - 동성혼인 - 삼년상 - 윷 - 편쌈 - 널뛰기 등의 풍속이 26항목에 걸쳐 서술되었고, 제5장 〈명절〉에는 설 - 대보름 - 제웅 - 부럼 - 답교 등 각 민속 명절의 유래와 놀이,행사가 18항목에 걸쳐 서술되었다.

제6장 〈역사〉에서는 한국 역사의 골격과 특징, 민족성, 당파성과 사대성,고쳐야 할 병폐 등 최남선의 그간 주장해왔던 사관이 16항 목에 서술되어 있다. 제7장 〈신앙〉에서는 고유 신앙과 단군 신앙, 대종교, 『정감록』등 남조선 사상, 동학, 유사 종교 등이 11항목에 걸쳐 서술되었고, 제8장 〈유학〉에서는 유교의 전래, 성리학 이외의 학파, 유현이需賢)과 서원, 유교 교육 기관, 유교가 한국에 미친 영향 등이 10항목에 걸쳐 서술되어 있다. 제9장 〈종교〉에서는 불교, 기독교, 도교, 천주교, 이슬람교 등이 18항목에 걸쳐 서술되었고, 제 10장 〈어문〉에는 한국어의 언어학상 지위, 훈민정음의 연원과 특색, 국문의 보급 과정 등이 15항목에 걸쳐 서술되었다.

 

3. 의의

『조선상식문답』은 분량으로 보면 적은 편이지만 내용으로 보면 조선학 즉 한국학 전체가 간명하게 압축되어 있다. 또한 그 짜임새가 탄탄하고 내용의 밀도가 높다. 간략하다고 해서 소략하지는 않은 것이다. 전문적 연구와 더불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글쓰기를 오랫동안 해왔던 최남선이기에 가능한 구성이자 서술인 것으로 보 인다. 특히 문답 형식으로 한국학 전반의 지식을 간명하게 압축하 고 거기에 자신의 사상을 담아낸 것은 최남션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앞서 구성과 내용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책은 역사, 지리, 문화, 종교, 문학, 언어 등 한국학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한민족의 모든 것에 대해 묻고 답하고 있다는 점에서 축소된 한국학 백과사전이라 평가해도 손색이 없다. 1946년에 출간되었음에도 현대 한국학 의 내용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제2장과 제3장에서 보이는 당시의 통계 수치 외에 이 책은 고쳐 쓸 것이 거의 없을 만큼 현대 한국학의 구도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는 현대 한국학이 최남선의 조선학에 그만큼 의존해 있단는 단적인 증거 이다.

『조선상식문답』은 최남선의 수많은 저술 중에서 단연 인기기 높았다. 발행 당시 많이 쇄를 거듭했을 만큼 독자들의 사랑을 밫아지만, 후대에도 계속 간행되었다. 1965년에 일본어 번역판이 출간되었고, 1972년에는 삼성문화문고 제16권으로 출간되었으며, 1997년에는 민속원에서 출간되었고, 최근이라 할 수 있는 2011년에 기파랑에서 출간되었다. 2007년에 두리디미디이에시 출간된 『조선상식』도 『조선상식문답』의 발췌 윤문본이다.

『조선상식문답』과 『조선상식문답속편』은 사실상 하나의 책이다. [[229]]

『조선상식문답』 일반 문화적인 내용을 다루었다면 『조선상식답속편』은 보다 고급 문화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지만, 최남선의 구상에서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1946년 출간 당시 『조선상식문답』은 최남선의 다른 저작물에 비해서는 평이한 문체로 쓰였다고 평가되었으나, 지금 읽기에는 어려운 편이다. 최남선 한국학 총서 중 하나로 출간되는 이 책은 1946년 동명사가 발간한 『조선상식문답』을 대본으로 하여 전문을 현대문으로 윤문하였다. 최남선의 명문장에 손상을 입히지 않았을까 우려되지만,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저자의 취지대로 ‘조선 지식의 지름길’ 을 밟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1 - Les circonstances de la publication

Le Monde quotidien des Coréens est un livre que Ch'oe Namsŏn a publié en 1946, an 2 de la Libération, afin de diffuser largement toutes sortes de connaissances relatives à la Corée. Il en avait auparavant, en 160 livraisons du 20 janvier au 22 septembre 1937, sérialisé {une première version} dans le Maeil sinbo en 456 entrées {distribuées} en 16 parties, dont une entière dévoué {respectivement} à l'espace (/au cadre territorial), au temps (/au cadre temporel) et au coutumes (/au cadre anthropologique). Il puisa dans cette solide ressource pour la recomposer en faisant paraître deux volumes, le Monde quotidien des Coréens (Questions-Réponses) et les Additions au Monde quotidien des Coréens (Questions-Réponses) à la Libération . 

Durant cette même période, Ch'oe Namsŏn relance {sa maison d'édition} Tongmyŏng-sa en consacrant ses efforts à la publication de ses propres travaux sous forme de livres. L'Histoire de la Corée pour les Coréens, l'Histoire du Mouvement d'Indépendance, l"Histoire de la Corée en un clin d'oeil, le Manuel d'histoire nationale pour adultes, {le manuel d'} Histoire nationale pour le Collège, les Monuments de Corée, La Culture coréenne et les Proverbes populaires de Corée se succédèrent littéralement en une sorte de bombardement.

Avec cette série concentrée de tirs éditoriaux, Ch'oe Namsŏn, qui atteignit la vieillesse avec la Libération, s'attachait à mettre en ordre son oeuvre scientifique en même temps qu'à surmonter une situation : pendant toute la fin de la période japonaise, les livres sur la culture coréenne et sur l'histoire coréenne avaient presque disparu. Grâce à la souveraineté et à l'Indépendance, le temps était venu d'accomplir sa tâche en maitre de soi-même sans que pourtant il existât aucun livre pour y faire face. Voilà donc les circonstances {de la publication} telles qu'exprimées dans la préface :

"L'Histoire récente nous ayant rendus souverains et indépendants –quoiqu'on en pense–, cette actualité qui [nous] rend [notre] propre maître ne réclame-t-elle pas de [nous] de nous demander, au nom de la postérité, ce que c'est que la Corée ? Car malheureusement, si les Coréens ignorent {tout de} la Corée, ce n'est pas entièrement de leur faute. Tant y contribue totalement aussi notre propre responsibilité à ne pas mettre à leur disposition un bref et commode Vademecum de ce qu'il faut savoir sur la Corée, et qui leur donnerait non seulement à apprendre et connaître, mais encore à voir et ressentir".

Ainsi qu'il apparâit bien dans ce passage, Ch'oe Namsŏn a {re}composé son ouvrage en reconnaissance d'une responsabilité à produire un Vademecum des savoirs de la Corée. Il a pour ce faire dégraissé le texte publié dix ans plus tôt en feuilleton dans le Maeil sinbo ; il y a simplifié la tournure des phrases et la réorganisé au moyen de Questions-Réponses pour satisfaire aux nécessités et auxurgence de son temps.

Dans le titre de l'ouvrage, {si} c'est bien le mot "Chosŏn" qui désigne la Corée, il ne renvoie pas à la dynastie du même nom, mais au nom donné à la péninsule coréenne [Han] pendant la période coloniale et d'emploi naturel tant que la République de Corée {Han'guk} n'a pas été promulguée. En langue moderne, il faudrait {pour être compris sans ambiguité} changer les mots pour dire "Corée".


2 - Structure et contenu

 
 
Academy of Korean studies Inalco Université Paris Diderot-Paris 7 EH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