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e original : 한국 근현대사와 민족해방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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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시기를 겪은 민족의 역사학이 그 시기를 연구대상으로 삼는 데는 몇 개의 단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의 경우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당초에는 그 시대를 떳떳하게 연구대상으로 삼을 만한 연구인구를 거의 가지지 뭇했었다. 그만한 연구자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은 이미 독립운동전선에서 전사했거나 그렇지 않다 해도 분단과정에서 학계에 자리하지 뭇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서 ‘원죄’를 느끼지 않아도 된 만한 새 세대의 연구층이 형성되었고 이들에 의해 식민지시기의 역사가 연구되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먼저 민족해방운동사 부분과 일본의 침략정책사 부분에 집중되었다.
민족해방운동사 연구는 앞으로 분단체제의 제약을 이겨냄으로써 그 단계
높임을 해갈 것이지만, 천체 식민지시대사 연구는 또 지금까지 거의 손대지 못한 식민지화의 원인을 냉철하게 규명하는 데서, 그리고 그 시기의 생활사, 특히 민중생활사를 밝히는 쪽에서 새로운 분야를 열어 갈 것이다.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어느 정도 논의되고 있는 식민지시대의 사회성격을 밝히는 일에 진전을 가져오게 할 것이다.
이 책은 처참했던 식민지시기 민중생활의 실장을 밝힘으로써 그 시대 생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애서 씌어졌다. 책 이름을 민중생활사 연구로 하지 않고 빈민생활사 연구로 한 것은 일반 노동자의 생활이 빠졌기 때문이기도 하며, 또 이 시기의 민중 개념을 서툴리 쓸 수 없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러나 식민지시기의 빈민은 곧 민중의 모체이기도 했다.
책안애서 어느 정도 밝혀지겠지만, 식민지시기의 빈민은 단순한 가난한 자들이 아니라 의식 있는 민중이었다. 농촌빈민은 바로 치열한 농민운동의 모태였으며 그 변형으로서의 화전민 사회는 민족운동 기지의 하나이기도 했다. 도시빈민으로서의 토막민과 실업자는 그 존재 자체가 식민지 수탈정책의 정확한 증거였으며 토목공사장 막일꾼도 노동운동과 일부 연결되고 있었다.
식민지 수탈정책이 만들어놓은 광범위한 이들 의식 있는 빈민의 존재야말로 바로 식민지시기의 사회성격이나 시대성격을 밝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이 책은 그 성격 규명을 위한 하나의 자료를 제공하자는 데 목적이 있고 그 때문에 구체적인 사례들을 많이 제시했지만, 그 밖에도 나름대로의 문제의식을 깔고 있기도 하다.
식민지시기 민족해방운동전선의 투쟁방법론과 그것이 구체화된 정강 · 정책은 이들 민중생활의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성립된 것이라 생각된다. 이미 「독립운동과정의 민족국가 건설론」에서 확인한 것과 같이 식민지시기 각 독립운동전선의 정강 · 정책은 정치체제에는 민주공화국 · 인민공화국 등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좌익전선은 물론 우익의 한국독립당이나 임시정부까지도 토지와 중요산업을 국유화 하는 사회주의 정책을 채택했다.
독립운동전선 정강 · 정책의 방향을 뒷받침한 민중생활의 현실을 밝히려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의 하나이지만, 식민지시기 민중생활의 현실이야말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는 싯점의 민족사적 단계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출판을 맡아준 창비사에 감사하며, 특히 전문적인 학술논문을 읽기 쉬운 책으로 만드는 작업을 맡아 수고한 고세현씨와 윤석기씨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신문자료 발췌를 맡아준 이만형군에게도 감사한다.
1987년 5월 28일
강 만 길